메모리에서 트랜지스터까지 Kepler가 그리는 AI 반도체의 미래

메모리에서 트랜지스터까지 Kepler가 그리는 AI 반도체의 미래
RyanLab 미래기술 투자연구소 | 2026년 10월 20일

메모리와 연산의 거리를 줄이는 미래를 표현한 개념 삽화입니다. 실제 제품 구조가 아닙니다.
AI를 더 널리 쓰기 위해 바뀌어야 할 것
AI와 반도체를 살펴볼 때 나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GPU와 모델의 성능으로 향했다. 누가 더 똑똑한 모델을 만들었는지, 어떤 칩이 더 많은 계산을 해내는지가 궁금했다. 그런데 Microsoft의 Maia 추론 전략을 들여다보면서 질문이 하나 더 생겼다. 계산 능력을 높이는 것만으로 AI를 충분히 저렴하게 만들 수 있을까.
이 질문은 메모리로 이어졌다. 연산기가 아무리 강력해도 필요한 데이터를 제때 받지 못하면 기다려야 한다. AI의 경제성을 이해하려면 계산 속도와 함께 데이터가 어디에 저장되고, 어떤 경로로 이동하며, 그 과정에서 얼마의 전력을 사용하는지도 살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과정에서 읽게 된 것이 Kepler Computing의 Act 1과 Act 2다. 두 글은 메모리를 먼저 개선한 뒤 논리 소자까지 확장하겠다는 회사의 계획을 설명한다. 이번 글에서는 그 계획의 의미를 풀어보고자 한다. 첫 제품의 실행 계획과 장기적인 기술 목표는 구분해서 읽어야 한다. [1][2]
계산이 빨라도 데이터가 늦으면 기다린다
메모리 병목은 Kepler만의 문제 제기가 아니다. 연구 논문 AI and Memory Wall은 연산 성능의 발전 속도에 비해 메모리와 연결망의 대역폭 증가가 느렸으며, 특히 디코더 기반 AI 모델을 서비스할 때 메모리 대역폭이 주요 제약이 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3]
도서관에서 자료를 가져와 문제를 푸는 연구원을 떠올려보자. 연구원의 계산 능력이 두 배가 되어도 자료를 운반하는 통로가 그대로라면 전체 업무가 두 배 빨라지지는 않는다. 자료를 더 가까이 보관하거나, 한 번에 더 많이 가져오거나, 불필요한 왕복을 줄여야 한다.
이 비유에서 용량은 보관할 수 있는 자료의 양이고, 대역폭은 일정 시간에 옮길 수 있는 양이다. 지연시간은 자료 하나를 요청한 뒤 받기까지 걸리는 시간이다. 서로 관련되어 있지만 같은 지표는 아니다. 용량이 커졌다는 발표를 속도가 같은 비율로 빨라졌다는 뜻으로 읽으면 안 되는 이유다.
Act 1의 첫 목표는 AI용 메모리
Kepler는 3D 통합과 새로운 소재를 결합해 SRAM에 가까운 전력 대비 대역폭과 HBM을 넘어서는 용량을 목표로 한다. HBM 대비 최대 10배 용량도 제시하지만, 공개 문구만으로 동일 조건의 완제품 비교가 입증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1]
여기서 중요한 것은 평가 기준이다. 더 많은 데이터를 담더라도 처리량이나 전력에서 손해를 본다면 고객에게 매력적인 제품이 아닐 수 있다. 반대로 대역폭이 높아도 실제 모델이 들어가지 않는다면 여러 칩으로 나눠야 하고, 그때의 통신 비용도 고려해야 한다. 결국 고객이 구매하는 것은 개별 숫자 하나보다 실제 작업을 처리하는 시스템의 성능이다.
FRAM이라는 이름만으로 이 차이를 설명하기도 어렵다. Infineon은 이미 강유전체 기반 F-RAM을 판매하며, 빠른 반복 쓰기와 전원 차단 후 데이터 보존을 강조한다. Kepler의 구상을 이해할 때는 강유전체의 사용 여부와 AI용 시스템에서의 용량·대역폭 목표를 따로 봐야 한다. [4]
메모리를 가깝게 놓는다는 의미
Act 1에서 회사는 메모리를 연산부 가까이 통합하고 연결 수를 늘려 데이터 이동의 거리와 에너지를 줄이는 접근을 설명한다. 같은 면적에서 더 많은 저장 소자를 배치하는 소재·공정 혁신도 함께 추진한다. [1]
앞의 도서관 비유를 이어가면 창고를 작업실 가까이 옮기는 일과 창고 내부의 수납 밀도를 높이는 일을 함께 하는 셈이다. 둘은 별개의 개선이다. 가까이 놓는다고 저장 용량이 저절로 커지는 것은 아니며, 많이 쌓는다고 열과 연결 문제가 자동으로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3D라는 단어 자체보다 실제 구현 방식이 중요하다. 층 사이의 열을 어떻게 빼내는지, 불량이 생겼을 때 전체 제품의 수율이 얼마나 영향을 받는지, 연결부가 반복 동작을 견디는지까지 확인해야 한다. 이 질문들은 Kepler의 실패를 전제하는 것이 아니라 제조 기술을 평가하는 기준이다.
첫 제품보다 더 넓은 제조 전략
Kepler는 기존 팹에 추가 공정을 붙이는 방식으로 EUV 의존을 낮추고, 새로운 첨단 팹보다 적은 자본으로 생산능력을 확보하겠다고 설명한다. 회사는 2026년 말 샘플, 2027년 생산, 2028년 미국 확대를 제시하며 2027년 예정 물량이 전량 배정됐다고 밝힌다. [1]
이 계획에서 내가 주목하는 부분은 공장이다. 새로운 메모리의 가격 경쟁력은 칩 설계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공장에 얼마를 투자하고, 얼마나 많은 정상 제품을 생산하며, 고객이 요구하는 품질을 얼마나 안정적으로 유지하는지가 모두 원가에 들어간다.
다만 기존 팹을 활용한다는 표현을 설비 변경이 전혀 필요 없다는 뜻으로 읽어서는 안 된다. 추가 장비와 공정 검증, 오염 관리, 고객 인증에는 비용과 시간이 든다. 예정 생산능력의 배정 역시 출하 완료나 매출 인식과는 다른 단계다. 계약 조건과 생산량이 공개되지 않았다면 그 문구로 실적을 계산할 수 없다.

그림 1 Kepler가 제시한 첫 제품과 제조 전략
Act 2가 트랜지스터로 향하는 이유
메모리의 배치가 좋아져도 데이터를 움직이는 회로의 에너지는 남는다. Act 2에서 Kepler는 낮은 전압으로 작동하는 새로운 소자를 통해 이 문제까지 다루겠다고 설명한다. 목표 전압은 300mV 미만, 이상적으로는 100mV 이하이며, SRAM 대체 기술과 새로운 논리 소자를 함께 제시한다. [2]
전압에 주목하는 이유는 회로의 스위칭 에너지가 정전용량과 전압의 제곱에 관련되기 때문이다. 단순한 예로, 다른 조건이 같을 때 전압을 절반으로 낮추면 해당 스위칭 에너지는 약 4분의 1이 된다. 그러나 칩 전체의 소비전력이 그대로 75% 줄어든다는 계산은 아니다. 누설전력과 주변 회로, 메모리, 실제 동작 조건이 다르기 때문이다.
실용적인 소자는 작은 에너지로 바뀌기만 해서는 부족하다. 명령이 없을 때 상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명령을 받았을 때 빠르게 전환하며, 수많은 소자가 함께 작동해도 오류가 통제되어야 한다. 연구실의 유망한 소재가 제품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어려운 이유다.
1000배라는 숫자를 읽는 방법
회사는 현재 소자와 정보 처리의 물리적 최소 에너지 사이에 큰 여지가 있다며 장기적으로 1,000배 수준의 개선을 지향한다. 이는 출시 제품의 실측 성능이 아니다. Act 2의 성능 곡선도 회사가 명시한 개념도다. 논리 밀도 개선 결과는 2026년 12월 기술 학회에서 발표할 계획이라고 적었다. [2]
나는 이 숫자를 투자 수익률이나 가까운 시기의 매출 전망으로 바꾸어 읽고 싶지 않다. 물리적 여유가 존재한다는 사실과 그것을 빠르고 저렴하며 안정적인 제품으로 구현하는 일 사이에는 거리가 있다. 무엇을 기준으로 몇 배인지, 어느 범위에서 측정했는지, 주변 시스템 비용이 포함됐는지가 필요하다.
제조 공정의 세대를 뛰어넘는다는 설명도 마찬가지다. 회사의 밀도 목표를 기존 팹의 물리적 선폭이 곧바로 줄어든다는 뜻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실제 제품에서 비교 가능한 기능과 면적, 소비전력, 원가를 놓고 확인해야 한다.
기존 컴퓨팅을 유지하면서 내부를 바꾸려는 구상
Kepler는 기존 소프트웨어와 CPU·GPU 등의 구조를 유지하며 상온에서 작동하는 기술을 지향한다. 메모리에서 제조 경험을 축적한 뒤 논리로 확장하는 것이 두 단계 계획의 연결점이다. [2]
이 방향이 실현된다면 고객 입장에서는 새 기술을 사용하기 위해 응용프로그램을 처음부터 다시 만들 필요가 줄어들 수 있다. 다만 호환성은 여러 층으로 나뉜다. 소프트웨어가 유지되어도 칩 설계, 패키지, 제조 공정과 품질 인증까지 그대로인 것은 아니다. 도입 비용과 시간을 평가할 때 이 차이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
또한 메모리 기술의 성공이 곧바로 논리 소자의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두 사업은 연결되지만 검증해야 할 성능과 신뢰성 조건이 다르다. 첫 제품의 일정과 장기 로드맵을 별도로 추적해야 하는 이유다.

그림 2 메모리에서 논리 소자로 확장하는 장기 기술 로드맵
앞으로 확인하고 싶은 증거
내가 먼저 보고 싶은 것은 고객이 평가할 수 있는 첫 제품의 사양이다. 용량, 대역폭, 지연시간, 전력과 수명 조건이 구체적으로 공개되어야 한다. 그다음은 실제 AI 모델에서의 결과다. 어떤 모델을 어떤 조건으로 실행했는지에 따라 성능의 의미가 달라진다.
생산 단계에서는 수율과 출하량, 재주문이 중요하다. 샘플이 작동하는 것과 고객이 반복 구매하는 제품이 되는 것은 다르다. 논리 기술은 별도로 학회 발표와 측정 조건을 살펴봐야 한다. 공개된 연구 결과가 늘어날수록 장기 목표와 현재 성취 사이의 거리도 더 분명해질 것이다.
나는 Kepler의 계획을 읽고 AI 반도체를 바라보는 질문이 넓어졌다. 누가 가장 빠른 칩을 만드는지에 더해, 누가 같은 전력과 자본으로 더 많은 유용한 일을 가능하게 하는지도 묻게 된다. 첫 메모리 제품이 그 질문에 어떤 답을 보여줄지, 그리고 그 답이 논리 소자까지 이어질지 차례로 지켜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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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와 읽는 기준
[1] Kepler Act 1 AI’s New Memory
[2] Kepler Act 2 The Next Exponential
[3] Gholami 외 AI and Memory Wall IEEE Micro 2024
[4] Infineon F-RAM 제품 소개
작성 기준은 2026년 10월 20일이다. 회사가 제시한 일정과 성능 목표를 독립적인 양산 검증 결과와 구분했으며, 비유와 평가 의견은 필자의 해석이다. 이 글은 특정 종목의 매수 또는 매도를 권유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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